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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칼리파 시대의 역사적 의미

정통 칼리파 시대의 역사적 의미
정통 칼리파 시대의 역사적 의미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세계에서 전개된 칼리파 제국의 역사 그리고 순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 이후 전개된 칼리파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리파 시대의 역사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슬람의 기치 아래 아라비아반도를 통일을 했고요, 632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632년부터 이슬람 세계는 칼리파 시대가 시작이 되는데요, 칼리파란,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일컫는 아랍어인데 이슬람 전체 공동체의 정치적, 행정적 최고 지도자를 이야기를 합니다. 이슬람 역사는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약 1,400여 년에 달하고 있는데 그 기간 동안에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이슬람 왕조들이 등장을 했습니다. 다양한 그리고 수많은 이슬람 왕조들 가운데서도 칼리파 왕국이라는 칭호를 쓴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칼리파가 있었느냐,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이슬람 역사는 크게 한 4단계 정도로 구분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통 칼리파 시대, 두 번째는 우마이야조 시대, 그리고 세 번째는 압바스조 시대, 네 번째는 오스만 튀르크 시대입니다. 정통 칼리파 시대는 아라비아반도 메디나를 중심으로 통치했던 시기로서 632년~661년까지의 기간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마이야조 시대인데요, 우마이야조 시대 때는 이슬람 통치의 중심지가 아라비아반도에서 시리아에 있는 다마스쿠스로 옮겨가게 됩니다. 우마이야조 시대는 661년~750년까지 이슬람 세계를 통치를 했고요. 그다음에 등장한 왕조가 압바스 조입니다. 압바스조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750년~ 1258년까지 통치를 했습니다. 흔히 많은 역사가들은 압바스조 시대를 이슬람 역사의 황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압바스조는 1258년 몽골 제국의 침입에 의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압바스조의 멸망 이후에 이슬람 세계의 주역은 아랍인이 주도했던 시기로부터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주도하는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유목민들 가운데서 바로 튀르크 인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고요, 그 가운데서도 오스만 튀르크가 이슬람 세계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오스만 튀르크는 1517년부터 1924년까지 바로 칼리파 제국으로서 이슬람 세계 전역을 통치를 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나중에 전성기 때는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한때 유럽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의 역사 전체가 현재까지 한 1,400여 년에 달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정통 칼리파 시대, 우마이야조 시대, 압바스조 시대에 이르는 1258년까지 이슬람 역사의 한 절반 정도는 아랍인 중심의 역사였고요, 나머지 13세기 이후부터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튀르크 중심의 역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정통 칼리파 시대

앞에서 설명드린 이슬람 역사 4단계 가운데서 첫 번째 단계인 정통 칼리파 시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리파란, 아까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입니다. 그래서 칼리파는 이슬람 공동체의 정치·행정적인 지도자로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의 수호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영어식 발음으로 '칼리프'라고 표기를 했는데요, 본 수업에서는 아랍식 발음에 따라서 '칼리파'라는 명칭으로 통일해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통 칼리파 시대에는 총 네 명의 칼리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아부 바크르, 두 번째 우마르, 세 번째 우스만, 그다음에 네 번째 알리, 이 네 명의 칼리파가 통치했었던 632년~661년, 이 기간을 보통 아랍 역사가들은 정통 칼리파 시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칼리파가 통치했었던 시기는 이 이후에도 계속되었죠, 이십 세기 초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들이 네 명의 칼리파 통치시기만을 정통 칼리파라고 특별히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시대 때 칼리파의 선출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이상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시기에는 칼리파의 선출이 앞의 칼리파가 사망하면 이슬람 공동체의 원로들이 모여서 회의를 통해 선출하는 그런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나고 우마이야, 압바스, 오스만 튀르크 시대가 열렸다 그랬죠, 그 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칼리파는 선출제가 아닌 세습제,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이어지는 부자 세습제로 바뀌게 되는데요, 정통 칼리파 시대 때까지만 하더라도 칼리파는 원로들이 모여서 회의를 통해 선출하는 그런 방식을 택했고요, 역사가들은 이러한 선출 방식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칼리파 선출 방식이라고 해서 이 시기를 특별히 정통 칼리파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정통 칼리파 시대에 있었던 네 명의 칼리파 모두 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고 또 훌륭한 칼리파로서의 그런 자질과 인품을 갖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우마르라는 두 번째 정통 칼리파는 이슬람 역사에 있어서 아주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었습니다. 바로 이 우마르 시대 때에 이르러서 이슬람 세계는 아라비아반도라는 지리적인 한계를 벗어나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할 당시에 이슬람의 영역은 아라비아반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오늘날 이슬람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슬람이 아라비아반도라는 지리적 경계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 먼저 극복해야 될 두 개의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다시피 비잔티움 제국은 아라비아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지중해 일대를 그 당시 장악을 하고 있었고요,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은 이란과 이라크를 중심으로 오늘날 페르시아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제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는 두 제국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또 여러 전투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요, 그러한 승리를 통해서 이슬람의 경계를 확장시키게 되었습니다. 제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가 통치했던 636년 무렵 아랍 이슬람군은 비잔티움 제국의 군대와 야르무크(Yarmuk)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당시에 아랍 이슬람군은 2만 5천 명, 비잔티움 제국 병사는 약 5만 명 정도였는데 아랍 이슬람군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뒀고요. 이 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해서 638년 예루살렘을 정복을 하고 639년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하게 되고요, 640년 시리아 일대의 정복을 완수하게 됩니다. 이 이후에도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 제국은 크고 작은 전투를 계속적으로 벌이게 되고요, 나중에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멸망을 하게 되죠. 두 번째로 제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 시대 때 아랍 이슬람 군은 페르시아를 통치하고 있었던 사산 제국과도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636년 11월에 치러진 카디시야(Qadisiyyah) 전투였고요, 이 전투에서도 아랍 군대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고요, 그 여세를 몰아 637년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크테시폰(Ctesiphon)을 함락하게 됩니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우마르 시대 때에 아랍 이슬람군과의 전투를 통해서 영토의 일부분 그래서 시리아 지역, 이집트와 같은 영토의 일부만 상실을 했다면 사산조 페르시아는 그 제국 자체가 무너지고 페르시아 영토 전체를 잃게 됩니다. 이 카디시야(Qadisiyyah) 전투를 계기로 해서 페르시아 지역은 이슬람 지역으로 편입이 되고요, 이 이후부터 페르시아인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버리고 이슬람을 믿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7세기~15세기, 중세 기간 동안 페르시아인들은 아랍인들이 통치했었던 압바스조나 우마이야조의 식민지 상태로 있다가 나중에 1501년 사파비 조가 건설되면서 그때야 비로소 독립 왕국을 다시 갖게 되는데 이때는 이미 과거와는 다른 이슬람 국가로서 다시 페르시아인들이 독립 왕국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