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스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 융합
안달루스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 융합
711년~1492년까지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 안달루스 지역에 머무는 기간 동안에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간의 문화적인 교류 양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달루스 지역에서의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간의 관계를 보는 시각은 역사학자들에 따라서 의견이 갈라지게 되는데요, 크게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학자들도 있고 어떤 학자들은 문명 간의 공존이라는 시각에서 보는 역사학자들도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을 문명의 충돌로 보는 관점
먼저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언급했던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저서를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구소련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앞으로 국제 질서는 7~8개 문명 간의 경쟁 시대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향후 서구 기독교 문명을 위협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명으로 중국 문명과 함께 이슬람 문명을 거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간의 갈등은 과거에도 계속 있었던 숙명적인 역사적 관계를 갖고 있다고 언급을 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자신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버나드 루이스의 지적에 따르며 1천 년 가까이 무어인이 스페인에 첫발을 내디딘 시기부터 터키가 빈을 2차 포위한 시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끊임없이 이슬람의 위협에 시달렸다. 이슬람은 지금까지 최소한 두 번에 걸쳐 서구의 생존을 위협한 경력이 있는 유일한 문명이다"라고 언급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가 무어인이 스페인에 첫 발을 내디딘 시기라고 표현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무어인은 중세 기간 동안에 유럽 사람들이 북아프리카 또는 안달루스 지역에 살고 있었던 무슬림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무어인입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이 안달루스 지역을 다스렸던 711년~1492년 이 시기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사무엘 헌팅턴은 과거에도 무슬림들이 유럽 기독교 문명에 위협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결국에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은 태생적으로, 역사적으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숙명을 갖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같은 사무엘 헌팅턴의 지적은 너무나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간의 관계를 단순화시켜서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은 상당히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그런 관계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다 무시하고 너무 단순하게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안달루스 지역에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끊임없이 군사적인 충돌을 한 것도 맞지만 동시에 양 문명은 문화적으로, 학술적으로 많은 교류를 했던 것들도 사실이었단 얘기죠. 그리고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두 세계가 군사적으로 충돌한 것은 매우 일시적인 기간이었고 대부분의 기간들은 안달루스에서 살았던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비교적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많은 교류를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역사학자들은 바로 안달루스 지역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간의 관계를 '콘비벤시아(Convivencia)'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콘비벤시아 관점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융합
콘비벤시아라는 것은 공존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로서 711년~1492년 이 기간 동안 무슬림, 유대교도, 기독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비교적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서로에 대한 관용적 전통을 유지했다는 시각입니다. 그들의 콘비벤시아(Convivencia) 관점에서 보면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이 세 문명이 서로 융합하면서 새로운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또 이슬람 세계는 아랍 지역에서 발전한 선진 과학, 의학, 철학을 기독교 세계로 전파시키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십자가 초승달 동맹'을 저술한 이언 아몬드(Ian Almond)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전 지구적 혹은 지정학적 차원의 특정한 대립이나 문화적 갈등을 두고 최근 10여 년간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이 횡행했다. 그러나 11세기의 무슬림 에스파냐(안달루스 지역을 얘기하는 거죠) 이 지역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이 무엇보다도 역사적 무지의 소산일 뿐임을 보여준다."라고 이언 아몬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이처럼 이언 아몬드는 안달루스 지역에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도 있었지만 또 많은 문화적인 공존이 같이 있었음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스페인 안달루스 지역을 여행해 보면 콘비벤시아의 전통이 그들의 예술이나 문화에 많이 남아 있는 흔적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코르도바에 있는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을 들 수가 있습니다.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은 스페인어로 'Mezquita-catedral de Córdoba' 이렇게 부르는데요, de Córdoba라는 것은 of Cordoba 즉, '코르도바의'란 뜻이고요. Mezquita라는 것은 영어의 모스크에 해당되는 거죠. 즉, 이슬람식 예배당을 얘기하는 것이고 Catedral라는 바로 성당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코르도바에 있는 모스크 대성당'이라는 상당히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요, 한 건물이 모스 크면서 동시에 가톨릭 성당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사진에서 보면 후 우마이야조에 건설한 코르도바의 모스크는 그 원형이 원래 이 다마스쿠스에 있는 우마이야 모스크와 형태가 비슷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은 785년 후 우마이야조의 건국자 압드 알라흐만 1세가 가톨릭 성당의 터전 위에 세운 모스크였습니다. 그리고 1236년 가톨릭 세력이 처음 코르도바를 점령한 이후에 이 성당을 보면서 너무나 예술적으로 완벽하게 잘 지어진 모스크를 보고 상당히 감탄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의 예배당인 모스크를 그대로 두기는 좀 힘들었겠죠. 너무나 잘 지어진 모스크를 부수기에도 너무 아까웠던 것이죠. 그래서 가톨릭은 이 모스크를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을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 발견이 되는데요, 코르도바의 지어진 모스크의 원형은 원래 다마스쿠스에 있었던 우마이야 모스크였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사진을 우리가 비교해 보면 그 모습이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가 있겠죠. 그리고 우리가 다시 역사적으로 보면 다마스쿠스에 지어졌던 우마이야 모스크는 원래 그곳에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교회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죠. 그래서 비잔티움 교회 양식이 다마스쿠스 모스크에 영향을 주었고요, 그 다마스쿠스에 지어진 모스크 양식이 코르도바에 다시 모스크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코르도바에 있는 모스크는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변하게 되죠. 그리고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교회 건축 양식에도 또다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은 서로 많은 대립을 했지만 또 이런 예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문화와 예술적인 면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이런 관계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이슬람교와 기독교 문명 간의 관계는 문명의 충돌이다 아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두 문명은 상당히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